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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인터뷰 Story Telling

» <더블>의 저자 박민규가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화제의 저자 일문일침]
18편의 ‘헌정 소설’ 모은 <더블>로 찾아온 황금 복면의 사나이, 박민규를 만나다
지난 12월21일, 코끝이 따뜻해 어색한 겨울밤이었다. 서울 홍익대 근처에 불 밝힌 카페와 식당 안의 사람들은 하염없이 소파에 엉덩이를 비비며 저물어가는 한 해를 더 길게 늘리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런 밤, 그 평화로운 기운을 굽이굽이 풀어내 그 사이에 앉아 다음날이 없을 듯 책을 읽고 싶은 밤, 박민규를 만나기로 했다.

당신의 타이틀과 나의 타이틀은 다르다

번화하고 안온한 거리를 지나 당인리발전소 방향으로 꺾어들었다. 골목은 한 발짝만큼씩 더 어두워졌다. <한겨레21>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창작과비평사가 공동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 어두운 골목을 더듬어 ‘만남의 장소’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시커먼 골목 어귀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나타났다. 박민규는 조도가 낮은 그 거리에서 행여나 사람들이 자신을 못 찾을까, 황금색 복면을 얼굴에 쓰고 있었다.

복면을 벗지 않은 채 그는 단이 없는 공간에서 독자와 같은 눈높이의 의자에 앉았다. 박민규의 목소리는
오래된 집 창틀에서나 보았던 불투명한 유리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탁하고 때때로 발음이 불분명했다. 미처 유리를 투과하지 못한 빛처럼 웅얼거리는 말들은 책 속의 반듯한 활자와는 사뭇 달랐다. 화려한 금색 마스크와 낮고 차분한 목소리의 동떨어짐은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보게 하는 그의 문장들, 웃음 또는 고민을 유발하는 소설 속 엉뚱한 상황들과 닮아 있었다.

화두는 역시나 최근에 나온 <더블>(창작과비평사 펴냄)이었다. 책은 제목 그대로 ‘더블’이다. 딱딱한 상자 사이에 두 권의 책이 끼여 있다. 책에는 그동안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단편 24편 중 18편이 담겼다. 장편소설 <핑퐁>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내놓고 올해 초 ‘아침의 문’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자신의 이런저런 근황을 알려왔지만 여러 지면에서 발표한 작품들을 정리하고 묶은 단편집은 <카스테라> 이후 5년 만이다.


책의 구성에 대해 박민규는 ‘LP’ 시절의 그리움을 담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책은 그 시절의 LP처럼 사이드A와 사이드B로 나뉜다. 일러스트가 그려진 속지는 당시의 그것과 닮았지만 더 세련됐다. 그는 “18곡의 트랙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작품이 읽히길 바란다고 말했다.

» <더블>
그렇다면 그의 사운드트랙을 흐르는 작품 중 타이틀곡은 무엇일까. 힘 빠지게도 작가는 꼭 하나 집어서 말하지 않았다. “특별한 하나는 없다. 읽는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타이틀을 하나 꼽으면 될 것”이라며 대답을 독자의 몫으로 넘겼다.

그러나 맥없다 느껴졌던 대답은 이후 다른 말들을 통해 그 뜻이 완성된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바 <더블>의 모든 단편은 누군가를 위한 선물로 쓴 것이다. 특정인을 지정한 헌정작을 쓴 계기를 묻자 그는 “진심을 담기가 편한 것 같아서다. 대상이 막연할 때는 진심을 담기가 힘들다. 정말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얘기를 들려주고 싶어, 라는 생각으로 쓴다. 전적으로 그 사람을 위해서만 표현하는
기분으로 쓰는 거다. 그리고 믿는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이 아무리 독특한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세상에 수만 명은 있겠지, 그래서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그 비슷한 수만 명이 즐겁게 글을 읽을 수 있겠지, 하는 믿음”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더없이 속을 썩인 아들이 작가가 되던 2003년 갑자기 세상을 뜨셨던” 아버지에게 바치는 ‘누런 강 배 한 척’,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서지 브린에게 주는 ‘끝까지 이럴래?’, 버락 오바마 이후에 나타날 미국 대통령을 위해 쓴 ‘루디’ 등은 이들 중 누군가를 똑 닮은 독자를 향한 선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특정 짓는 어느 하나는 없지만 작품집을 읽다 보면 독자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맞춤한 ‘타이틀’을 찾을 수 있으리란 얘기다.

“현실과 환상이 짝을 이뤄 세상을 만든다”

이날 모임에는 그의 등단(2003년) 동기이자 ‘절친’ 소설가인 천명관도 함께 자리했다. 사이드B에 실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박민규가 천명관에게 주는 글이다. 원래는 영화배우 존 굿맨에게 주려고 쓴 소설인데, 글을 쓴 직후 작업실에 천명관이 놀러와 “(존 굿맨이 출연한) <바톤 핑크>야말로 마치 내 인생을 얘기한 듯한 영화였어!”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쳐먹었단다. 코언 형제의 <바톤 핑크>는 순수하게 작품성을 지키려는 시나리오 작가와 그에게 상업성을 강요하는 할리우드 제작자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존 굿맨은 영화에서 영업사원으로 나오는데 박민규가 보기에 영화 속 그는 “너무 뚱뚱해서 보기에 안쓰럽다”. ‘딜도갉’에서도 주인공이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나오는데, 거구에다 자동차를 팔기 위해 멀리 화성까지 가며 온몸을 던져 영업에 매진한다. 여러 지점이 맞닿아 ‘딜도갉’는 <바톤 핑크>를 닮았고 그래서 이 작품은 <바톤 핑크>에 출연한 존 굿맨에게 헌정될 뻔했으나, 천명관이 <바톤 핑크>를 좋아한다고 소리친 덕분에 결국 박민규의 ‘절친’ 천명관을 위한 것이 된 것이다. 돌고 도는 헌정사 또한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천명관은 박민규의 글에 대해 “문학만이 가능한 대범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상상할 수 있는 것에서 슬쩍 더 뛰어 넘어갔을 때의 쾌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깬 것 같은 느낌을 박민규의 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대범한 상상력의 작갗 박민규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짓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처럼 두 가지가 함께 이 세상을, 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인체를 보라. 정형화돼 보이지만 자꾸 확대해 들어가다 보면, 그러니까 마이크로의 세계에서 보면, 우리 인체도 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거대한 공간 같은 것 아닌가.” 시선의 지점에 따라 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환상, 환상이라 생각했던 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가까운 예도 든다. “내 친구의 아내가 자신의 아이가 특목고에 가면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건 현실일까, 환상일까. 우리는 살아 있지만 밤이 되면 잔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나라는 자아는 어디 갔다 오는 걸까,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 작품집엔 처절하게 현실처럼 들리는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에게 헌정한 ‘누런 강 배 한 척’과 같은 것이다. 그는 이 소설에 대해 “아버지가 납득하실 만한 글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딜도갉’ 같은 소설을 읽고는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하실 거다. 미술로 치자면 아주 기초적인 석고 데생을 하는 기분으로 글을 썼다.” 치매에 걸린 아내와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노인의 시선을 그린 이 소설은 관념적인 것만 같던 삶과 죽음이 현실에 바짝 다가온 것에 관한 통찰을 차분하게 담고 있다.

사색·위무·거침없는 상상력의 공존

‘근처’ 또한 그런 작품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회사에 전념하며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결국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고향에 돌아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묻어뒀던 보물상자를 찾아 꺼내보며 생을 정리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대화의 끝 무렵 박민규가 낭독한 ‘근처’의 부분을 활자로 전한다. “사는 것보다 서 있는 게 더 힘든 저녁 나절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그의 작품집은 사색과 위무와 거침없는 상상력이 동시에 교차한다. LP판 위에 올려진 작은 바늘이 여러 음악을 그려내듯 어느 낮과 밤 타이프를 치고 있었을 그의 손가락 끝도 록과 발라드와 재즈와 헤비메탈을 오가는 이야기들을,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지어내고 있었나 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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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액보험 수익률 재테크

변액보험 수익률 어디가 높나



변액연금보험 수익률이 크게 회복됐다. 매경이코노미가 지난 1년간 22개 생명보험사의 647개 변액보험 상품 수익률을 조사한 결과 평균 수익률은 20.68%로 나타났다. 지난 8월 매경이코노미가 조사한 변액보험 1년 평균 수익률은 6.34%였다. 당시와 비교하면 수익률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유형별로 보면 주식형 상품 수익률이 평균 37.59%를 기록하며 가장 좋았고, 주식혼합형과 채권혼합형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채권형 상품의 수익률은 4.1%에 그쳤다.

참고로 최근 변경된 변액보험 펀드 유형 분류에 따르면, 주식 최저 편입 비율이 자산의 60% 이상인 변액보험이 주식형 상품이며, 50~60% 미만이면 주식혼합형, 30~50% 미만이면 채권혼합형Ⅰ, 30% 미만이면 채권혼합형Ⅱ에 해당한다. 이밖에 채권형 상품은 주식이 편입되지 않고 채권 또는 채권 관련 파생상품 최저 편입 비중이 60% 이상인 상품을 의미한다.

어디가 잘했나



이번 조사에서 대체적으로 주식형 편입 비중이 높은 보험사들의 수익률이 높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면서 국내 주식이 상당 부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다. 전체 수익률을 놓고 볼 때 1위부터 4위까지를 뉴욕생명, AIA생명, 라이나생명, PCA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들이 싹쓸이했고 6위도 메트라이프생명이었다.

뉴욕생명은 지난번 조사에서 수익률 6.13%로 13위였으며, PCA생명도 수익률 2%대로 19위였다. AIA생명은 8월 조사에서 전체 보험사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해 꼴찌를 기록했던 곳이다.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의 변액보험 수익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09년 주식시장이 상승 국면에 진입했기 때문에 주식 중 리스크가 적은 주식 편입 비중이 높은 외국계 보험사들의 변액보험 수익률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상기 5개 외국계 보험사들의 주식형 상품 비중은 전체 상품의 51.9%로, 이들을 제외한 보험사들의 주식형 상품 비중인 13.1%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반면 지난 2009년 8월을 기준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대형보험사들은 이번 조사 결과 수익률 상승폭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8월 기준 수익률 8.92%를 기록해 4위였던 교보생명은 이번 조사에서 수익률이 9.18%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쳐 16위로 떨어졌다. 지난 조사에 비해 수익률이 7.78%포인트 상승한 대한생명은 8위에서 20위로 떨어졌고, 역시 수익률이 5.88%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친 삼성생명은 11위에서 21위로 하락했다. 류건식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대형 보험사들의 변액보험 상품은 채권 편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서 수익률 상승폭이 적었다”고 말했다.

2009년 9월 기준 변액보험 규모 2조원 이상의 대형사들을 기준으로 보면 PCA생명이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19개의 변액연금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PCA생명의 수익률은 27.8%로 대형사들 중 수위를 차지했다. PCA생명은 “장기 투자를 원칙으로 주가 급락 시기에도 기존 투자 비중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수익률 상승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메트라이프생명의 수익률도 20%대로 높은 편에 속했다. 메트라이프생명은 36개 변액보험 상품 중 19개 상품을 주식형 상품으로 운용하고 있다. 19개 주식형 변액보험의 수익률은 41.66%에 달해 전체 변액보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국내 대형사 중에서는 미래에셋생명이 유일하게 20%대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현재 65개 변액보험 상품을 운용해 상품 수 기준으로 국내 최다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미래에셋생명은 이번 조사에서 수익률 21.74%를 기록해 대형사 중 3위에 올랐다. 미래에셋생명은 국외 업체들에 비해 채권형이나 채권혼합형 상품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수익률이다. 현재 미래에셋생명이 판매하고 있는 주식형 상품은 1개인 반면, 채권형은 12개, 채권혼합형Ⅰ과 채권혼합형Ⅱ는 각각 13개와 16개를 운용하고 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수익률이 가장 낮은 업체는 우리아비바생명이었다. 우리아비바생명의 수익률은 2.01%로 24위 삼성생명의 수익률보다도 10%포인트 이상 현저하게 낮았다. 5개의 변액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우리아비바생명의 상품 중 3개는 주식형으로, 이들의 수익률은 각각 1.95~3.4%에 그쳤다. 유범종 우리아비바생명 변액보험운용파트 차장은 “변액보험을 처음 설정한 지 두 달밖에 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형별 수익률



매경이코노미가 주식형, 주식혼합형, 채권혼합형Ⅰ, 채권혼합형Ⅱ, 채권형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업체를 각각 5개씩 꼽은 결과, 동양생명과 미래에셋생명이 각각 4개 부문에서 베스트 5위 안에 진입했다.

동양생명은 주식형에서 1위, 주식혼합형에서 3위, 채권혼합형1과 채권혼합형2에서 각각 4위를 기록했다. 5위 안에 진입하지 못한 채권형에서도 6위를 기록해 아슬아슬하게 전 부문 5위를 기록하지 못했다.

주식형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동양생명이 2008년 4월 설정한 르네상스주식형은 무려 58.7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동양생명은 2008년까지 변액보험 규모가 크지 않아 운용 자산 배분 전략에 차별성을 두기 힘들었지만, 2009년 규모가 크게 상승하면서 주식·채권별 복수운용체제를 도입했다.

동양생명은 또한 “시장을 정확히 예측해 실시간으로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절해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생명은 채권혼합형Ⅱ에서 2위를 기록했고, 채권혼합형Ⅰ에서 3위를 기록해 채권혼합형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주식형 수익률은 4위, 주식혼합형 수익률은 5위를 기록했다. 한편 채권형 수익률은 4.08%로 전체 9위였다.

배창준 미래에셋생명 변액보험운용 팀장은 “중장기 투자원칙에 입각한 자산 배분과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비결”이라고 말했다.

부문별로 보면 모두 해당 유형에서 한두 개 상품만 소수로 판매하고 있는 업체들이 1위를 차지했다. 주식형 1위 동양생명과 주식혼합형 1위 신한생명은 해당 유형 상품을 단 1개만 판매하고 있다.

주식혼합형과 채권혼합형Ⅰ,Ⅱ에서 각각 수위를 차지한 신한생명, 금호생명, 동부생명도 모두 해당 유형을 단 2개만 판매하고 있다. 부문별로 여러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업체들 중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업체를 살펴보면 주식형에서 신한생명의 수익률이 좋았다. 12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신한생명의 주식형 수익률은 45.15%로 전체 7위다.

주식혼합형과 채권혼합형Ⅰ, 채권혼합형Ⅱ의 경우 미래에셋생명이 눈에 띈다. 21개의 주식혼합형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미래에셋생명의 수익률은 32.59%로 전체 5위지만 10개 이상의 주식혼합형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업체들 중에서는 가장 수익률이 좋았다. 13개의 상품과 16개의 상품을 각각 운용하고 있는 채권혼합형Ⅰ, 채권혼합형Ⅱ에서도 미래에셋생명은 20% 안팎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채권형의 경우 8개의 상품을 운용하고 있는 흥국생명이 7.74%의 수익률로 채권형 상품을 잘 운용했다. 흥국생명의 단기채권형 상품인 (무)원더풀변액연금Ⅱ 등은 11.96%의 수익률로 전체 112개 개별 채권형 상품 중 수익률이 2위였다.

한편 총 144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자산규모 2조원 이상 대형사 전체 변액보험 수익률은 19.79%였고, 기타 중소형사 상품 503개의 전체 수익률은 21.39%로, 중소형사 변액보험 상품이 대형사보다 약간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희철 기자 reporter@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39호(10.01.13일자) 기사입니다]

삼성고발한 중소기업인 경제경영


"기업가 정신? 삼성이 죽였다"

[인터뷰] 삼성을 '사기'로 고발한 중소기업인

9일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기업친화적)"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이렇게 되면, 정말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비즈니스 프렌들리', 그런데 왜 창업은 줄지?"

마침 9일자 <조선일보>에 눈길을 끄는 사설이 실렸다. "IT 벤처기업, 2년 새 1600개 줄었다"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정보기술(IT) 부문에서 신규 창업(創業) 열기가 급속히 식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이 사설은 하루 전인 8일, <조선일보>에 실린 "식어버린 성장엔진 'IT창업'"이라는 기사와 짝을 이루는 내용이다. 이 기사에서는 이처럼 창업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새로운 수익모델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업계 전체가 보수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가 정신'의 퇴락을 우려하는 기사인 셈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는 정권에 힘이 실리고 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신규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은 왜 시들어가고 있을까.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라는 설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역시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같은 수사를 쓰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기업 친화적인 정책 기조는 바뀐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기업가 정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을까.

앞서의 기사를 끝까지 읽어도,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구할 수 없다. 싸이월드를 창업했던 형용준 이인프라네트웍스 대표의 말을 인용해 "젊은 창업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마케팅·재무·시장조사 등 부문별 전문가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을 따름이다.

"규제가 '기업가 정신' 죽인다"라고?

다시 의문이 든다. 마케팅·재무·시장조사 등 부문별 전문가 지원 시스템이 갖춰지면, 기업가 정신이 살아날까. 그래서 신규 창업이 활성화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최근 창업한 기업가들을 찾아야 한다. 당연히 이들은 중소기업인이다. 처음부터 대기업으로 창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부문별 전문가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면, 기업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원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얼라이언스시스템이라는 IT벤처기업을 운영했던 조성구 씨는 "기업가 정신을 죽이는 것은 재벌"이라고 콕 짚어서 말했다. 재벌의 횡포 때문에 시장에 갓 진입한 중소기업이 설 자리를 잃곤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가로채거나,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제품 가격을 터무니없이 깎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잦아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 언론의 주장과 달리, 정부의 다양한 규제 때문에 겪는 불편은 사소한 것이라고 했다. 재벌의 횡포를 규제하지 않는 한, 위험을 무릅쓰고 창업에 나서는 이들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룰'이다"

존경받는 벤처기업인을 꼽을 때면, 늘 빠지지 않는 안철수 씨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국내1위 보안업체인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안철수 의장은 최근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기업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안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무법천지를 만드는 것과 동일시되어서는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작은 정부에서 중요한 점은 공정한 룰을 만들고 기업들이 잘 지키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무조건 규제만 푼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젊은 기업'이 없다")

"무조건 규제만 푼" 사례로 꼽히는 것은 많다. 중소기업인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가 있다. 재벌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소기업이라 해서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이다. 또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가진 재벌 계열사가 진출하면서, 해당 산업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 계열사 간 부당 내부 거래 등을 통한 잇점을 이용해 재벌 계열사가 횡포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이런 불공정 경쟁을 통해 재벌 계열사가 해당 시장을 독식할 경우, 독과점의 피해가 생길 수 있다.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온다.

"대기업이 사상 최대 수출해도, 열매는 외국 기업이 챙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책 기조에서 물러설 기미가 없다. 대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돼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시사인> 인터뷰에서 안 의장은 이런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안 의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대기업의 단기시각에서 비롯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다 죽어나갔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대기업이 사상 최대 수출을 해도 그 열매는 외국 중소기업에게 돌아가고 있다. 대기업이 글로벌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중소기업으로부터 납품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기업만 살리면 우리 경제가 좋아질 줄 알고 국민 세금으로 환율 방어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데, 그 혜택도 결국 외국 기업이나 대기업에만 간다. 정부는 한국 경제 발전이나 고용에 대기업이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객관적 분석을 하고 거기에 맞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만 내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대기업 요구 거부한 중소기업인의 비극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중소기업이 다 죽어나간" 사례에 대한 적나라한 증언자가 조성구 씨다. 그는 대기업의 요구를 거부하고, 소송을 벌이다 결국 자신이 경영하던 기업을 빼앗겼다.

얼라이언스시스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 조 씨는 '대·중소기업상생협회'라는 단체를 조직해 회장을 맡고 있다. 대기업의 하도급 관행에 혹독하게 질렸던 그가 스스로의 경험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활동이다. 또 대기업의 불합리한 하도급 관행으로 인한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활동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의 한 컴퓨터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던 조 씨가 사무자동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얼라이언스시스템을 세운 것은 지난 1997년 5월이다. 6년 동안의 영업 경험을 통해 정보기술 관련 시장 동향에 눈을 뜨게 됐던 그는 창업을 결심하고 1년 동안 꼼꼼하게 사업계획서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런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장은창업투자자문에서 3억 원을 투자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유능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모으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그래서 기술력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미국 유니시스, 일본 히타치 등 외국 유명기업의 협력업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연구법인도 세울 수 있었다.

이 회사가 내놓은 간판 상품은 '엑스톰(XTORM)'이다. 금융기관 업무를 완전히 전산화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이다. 비슷한 기능을 갖고 있는 외국 업체의 제품과 여러 차례에 걸쳐 성능 비교 시험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료 처리 속도가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을 거둘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내 금융기관을 상대로 한 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삼성과 손 잡는 순간, 기회가 재앙이 됐다

2002년 4월, 굵직한 기회가 다가왔다. 이 회사가 국내 최초로 진행되는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관련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우리은행'으로 전환하기 직전, 한빛은행이 발주프로젝트였다. 삼성SDS, 현대정보기술 등이 입찰에 참가했다. 이 회사는 삼성SDS와 제휴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회가 재앙으로 돌아서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 얼라이언스시스템 전 대표 조성구 씨. ⓒ프레시안

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삼성SDS 측은 당초 사용자수 제한이 없는 무제한 사용자 조건 견적을 요구했다. 그런데 얼마 뒤 말을 바꿨다. 500명 사용조건과, 300명 사용조건의 견적을 요구했다. 조 씨는 삼성SDS측의 이런 요구에 대해 "우리은행이 입찰에 대한 낙찰 예정가격을 산정하느라 다양한 형태의 가격조회를 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SDS 측이 요구하는 수위는 계속 높아졌다. 당시 상황은 조 씨가 "중소기업, 삼성과 인연을 맺어 망가지다"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 자세히 묘사돼 있다. (☞ 기고문 전문 보기)

"그 뒤 삼성SDS는 입찰조건이 300명 사용자 조건이라고 알려 왔고, 300명 사용자조건으로 집중적으로 가격 협의가 이뤄졌다. 적정가격으로는 28억 원을 받아야 했지만 삼성SDS측은 국내 최초의 큰 사업이니 전략적으로 대응해 미래시장을 개척하자고 제안해 왔다. 그래서 4월 20일 입찰 당일 오전 6시까지 밤새 가격을 협의한 끝에 12억3400만 원까지 내려갔다. 가격이 너무 내려갔기 때문에 삼성그룹에서 향후 우리 제품을 30억 원 어치 팔아 주는 조건이었다. 결국 삼성SDS는 입찰에 성공하여 사업을 따내게 되었다.

그러나 삼성SDS는 입찰이 끝난 후 일방적으로 10억4500만 원으로 가격을 맞추라면서 더군다나 5년 A/S를 공짜로 해달라고 했다. 실제로 5년 동안 A/S를 공짜로 해주면 제품가격은 6억~7억 정도밖에 되질 않는다. 세상에 28억 적정가격이 12억3400만 원을 거쳐 10억4500만 원으로 내리더니 마지막에는 6억~7억 원이 되어 버리다니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 더 기가 막히는 것은 300명 사용조건을 무제한 사용자조건으로 바꾸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장 손해 보더라도, 대기업과 좋은 관계 맺는 게 이익"이라고 믿었는데…

조 씨가 삼성SDS 측의 요구를 수용한 이유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삼성SDS와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 씨가 경영하던 얼라이언스시스템과 삼성SDS가 '솔루션 공동사업을 위한 협약서'를 체결하게 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조 씨에 따르면, 대외비 문서로 작성된 이 협약서에는 삼성 계열사 관련 프로젝트에 얼라이언스시스템의 제품인 'Xtorm'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리고 삼성SDS는 'Xtorm'이 포함된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30억 원 규모로 발주한다는 내용도 담겼다고 했다.

그런데 협약서가 체결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 씨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삼성SDS가 우리은행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Xtorm' 대신 외국 경쟁사의 제품으로 교체하려고 은행 측과 협의했다는 것. 배신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리은행 측 담당자로부터 "'300명 사용조건'이 아닌 '무제한 사용조건'으로 삼성SDS 측과 제품공급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사무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사용조건에 따라 가격이 바뀐다. 조 씨가 삼성SDS 측과 계약을 체결할 때, 적정가격을 28억 원으로 설정한 것은 삼성SDS 측이 '300명 사용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나마도 삼성SDS 측의 요구에 따라 가격을 크게 깎았었다. 그런데 '무제한 사용조건'이라면, 적정가격은 세 배 가까이 뛴다. 이렇게 보면, '10억4500만 원'이라는 계약가격은 적정가격의 12~15% 가량에 불과한 셈이다.

삼성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다

"삼성SDS 측이 중소기업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라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래서 '무제한 사용조건'이 명시된 입찰 서류 등을 증거로 제출하며, 삼성SDS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2004년 8월의 일이다. 이에 삼성SDS 측은 고소 취소를 요구했다. 조 씨는 바로 거절했다. 조 씨의 회사는 삼성SDS와 함께 진행하던 다른 프로젝트에서 갑자기 배제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국내 시장에서는 영업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송에서 지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성SDS측의 사기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삼성SDS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 3월, 조 씨는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어서 2005년 7월, 대검찰청에 항고했지만 역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처음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이어진 항고에서도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은행(당시 한빛은행)의 입찰제안서, 얼라이언스시스템과 삼성SDS의 계약서, 우리은행 관계자와 기타 관계자들의 녹취록 등을 증거로 제출했음에도 그랬다.

삼성을 고소한 결과? "길거리에 나앉았다"

삼성을 고소한 대가는 끔찍했다. 조 씨가 경영하는 얼라이언스시스템은 과거 삼성SDS에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로부터 20억 원을 빌린 적이 있다. 조 씨가 대검찰청에 항고한 직후, 이 장비업체는 당장 돈을 갚도록 요구했다. 삼성SDS를 고소한 후, 국내 금융기관 관련 전산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리면서 돈줄이 말랐다. 그래서 한꺼번에 20억 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결국 조 씨는 총 43억원의 빚을 진 채, 이 회사 대표이사직에서 쫒겨났다. 그리고 돈을 빌려줬던 장비업체가 이 회사를 강제인수 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측은 'Xtorm' 관련 핵심 기술에만 관심 있을 뿐, 계속 경영할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았다.

탄탄한 중소기업 사장인 조 씨 덕분에 넉넉하게 지내던 가족들은 갑자기 월세방으로 옮겨야 했다. 절망감에 쌓여 방황했지만,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대·중소기업상생협회'를 결성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종백'이라는 이름이 귀를 때렸다"

그런데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지내던 조 씨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려왔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발표한 내용이다. 당시 김 변호사는 삼성이 돈을 주며 관리한 법조인으로 이종백, 이귀남, 임채진 등을 꼽았다. 그런데 이종백이라는 이름이 귀를 때렸다. 조 씨가 2004년 삼성SDS를 고소했을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이종백이었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서울중앙지검이 삼성SDS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게 그래서 였나' 싶었다. 사실 당시 검찰이 보여준 태도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서울중앙지검은 입찰조건과 관련해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었다. 하지만 수사를 통해 이를 밝히는 대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대검찰청은 사기 혐의에 해당하는 이 사건을 이례적으로 마약반에 배당했다.

삼성을 다시 고소했다

이런 기억이 떠오르자, 신경이 팽팽해졌다. 그래서 다시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조 씨는 올해 2월 18일 삼성SDS와 관련자 3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다시 고소했다.
▲ 조성구 씨가 받은 문자 메시지. ⓒ프레시안

하지만 조 씨는 지난 2일 수사를 맡은 서울 수서경찰서 경제3팀으로부터 "검찰에 각하 의견으로 결과를 송치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고소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이 경찰에 통보한 수사기간은 오는 19일까지다. 아직 수사기간이 남아 있는데, 경찰이 수사를 중단한 셈이다. 게다가 조 씨는 삼성SDS를 재고소하면서, 새로운 증거를 추가했다. 우리은행 전산 프로젝트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들의 녹취록과 확인서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사건의 참고인들이 출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마침 삼성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조준웅 특검 역시 삼성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때문에 구성된 특검이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을 오히려 덮어버리는구나' 싶었다. 조 씨가 고소한 내용에 대한 검·경의 수사 중단이 석연치 않게 다가왔던 것도 그래서였다. 경찰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지난 3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조 씨의 목소리에서 힘이 풀렸다.

日 사장 "그거 우리가 30년 전에 써먹던 수법인데"

이런 그에게 물었다. "만약 다시 경영자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것, 특히 소프트웨어 사업을 하는 것은 결국 망하는 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이런 이야기가 뒤따랐다. "삼성을 고소한 직후, 국내 시장에서 쫒겨나다시피 했다. 진행하던 거래가 대부분 끊겼다. 그래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로 했다. 다행히 일본 대기업과 금융기관에서 우리 제품을 쓰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본의 전자업체인 NEC 사장에게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을 전했더니, 그랬다. '아, 그거 우리가 30년 전에 써먹던 수법인데'라고."

중소기업 망하면, 결국 대기업도 손해다

이어 그는 '대·중소기업상생협회' 활동을 하며, 접한 외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사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본에서도 과거에는 협력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기술을 빼앗는 일, 그리고 대기업의 영향력을 이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협력업체를 시장에서 내쫒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관행이 싹 사라졌다.

어차피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부품을 모두 대기업이 개발할 수는 없다. 협력업체에게서 납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협력업체들이 부실해지면, 결국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의 질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대기업 역시 손해를 입는다. 이른바 '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외국 협력업체와 제휴하는 방안도 모색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런 깨달음이 번지면서, 대기업이 협력업체를 동반자로 여기는 문화가 생겼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협력업체와 모범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도요타 역시 협력업체가 납품단가를 깎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협력업체에 손해를 뒤집어씌우는 방식은 아니다. 도요타에는 원가 절감에 대한 노하우가 풍부하게 축적돼 있다. 이런 노하우를 전수해서, 원가를 절감하게 해주는 것이다."

"중소기업 현실 알았다면, 창업 안 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우리에게 너무 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월 삼성전자에 115억76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출범 이래 최대 금액이다. 당시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저지른 불공정행위는 다양하다.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임의로 깎는 경우, 협력업체의 경영에 간섭하는 경우, 협력업체가 개발한 핵심 기술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조 씨는 이런 사례는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중소기업만 겪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상당수 재벌 계열사와 중소기업 사이에서 거의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관행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관행이 사라지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 새로 창업에 뛰어드는 이들은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조 씨 스스로도 설령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창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세상을 잘 몰라서, 그처럼 과감하게 창업을 했다는 이야기다.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의 현실을 알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으리라는 것.

"바보야, 문제는 재벌이야!"

이런 그에게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우스워보였다. '누구 좋은 일 시켜주려고'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물었다. "요즘 신규 IT업체가 줄어든다던데…"

"당연하죠. 결국 재벌에게 먹히게 돼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링턴 민주당 후보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내세워 당선됐다. '기업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재벌의 비리를 눈감아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한국에서는 "바보야, 문제는 재벌이야!"라는 구호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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