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라파포트
1978년은 괜찮은 해였다. 다이아몬드 산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은 신나는 한 해를 보냈다. 나는 26세였고 다이아몬드는 멋졌다. 7월에, 나는 첫 번째 다이아몬드 가격 리스트를 발행했다. 사람들은 웃었다. 하지만 가격 리스트 6개가 한 부에 25센트에 팔렸다. 그 뒤의 일은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훨씬 전인 1978년에 라파포트와 정보 혁명이 다이아몬드 업계에 불어 닥쳤다.
30년이 휙 지나갔다는 것은 믿기 힘든 노릇이다. 현명했던 구세대는 은퇴를 했고 이 자리를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세대가 메웠다. 나는 이러한 변화와 도전과 기회를 목격한 중간 세대이다. 우리 세대는 세계 제1차 대전과, 경제 공황과, 붐과, 번영과 가난을 직접 들으며 자랐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은 젊은 세대의 에너지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보는 시각의 다툼 속에서 한 때 우리 것이었던 미래는 이제 그들의 것이 되었다. 이것을 깨닫는 데 30년이 걸렸다.
지난 30년은 변화와 기회의 축하의 장이었다. 정보 혁명의 물결을 만들어 내고 따르는 것은 매우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혁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업계의 진화였다. 다이아몬드와 주얼리 업계인들은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다이아몬드 산업은 지난 30년 동안 닥쳐온 모든 도전에 맞섰으며, 이겨냈다. 어떤 도전도 우리는 겪고, 살아내고, 이겨내 왔다. 1970년대 말의 솟구치는 다이아몬드 가격과 심각한 공급 부족, 1980년대 초의 다이아몬드 투기와 투자, 제어력을 잃은 시장의 붕괴, 그 후 생겨난 파산, 감정서 문제, 라파포트 가격표, 다이아몬드의 일반 재화화, 팬시 칼라 다이아몬드의 붐, 태국과 중국으로의 연마 중심 이동, 중동에서 일어난 붐, 독점회사의 다이아몬드 탐사, 순익 감소, 노마진, 인터넷 붐, 소비자에 대한 가격 공개, SOC(서플라이어 오브 초이스), 드비어스의 소매 브랜드 개발, 다운스트림 마케팅, 수직 통합, 브랜드 구축, 커팅 감정, 합성 문제, 처리 문제, 블러드 다이아몬드, 킴벌리 프로세스, 패트리어트 법안, 광산에서 소비자까지의 추적 마케팅, 포에버마크, 두바이, 인도와 중국의 수억에 이르는 새로운 수요층도, 최근에는 미국의 경제 침체, 파산 및 은행 경매 증가, 심각한 세계 경제 불안, 아랍과 러시아의 수요 증가, 물가 상승과 동반한 큰 사이즈 스톤의 가격 상승 등 도전은 계속되어 왔다.
우리는 다이아몬드 및 주얼리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가 지난 30년 동안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이 시기 동안 발전을 거듭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느껴야 할 것이다. 우리와 우리 업계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강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로부터 힘과 자신감을 얻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에 빠져 이를 즐기는 것의 위험성을 알아야 한다. 자기만족 속에 안주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30년은 어떠할 것인가? 30년 후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은, 여러분의 사업은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인가? 어떤 도전을 이겨내야 할 것인가? 어떤 성취를 이루어낼 것인가? 어떤 기회를 포착할 것인가? 여러분의 사업과, 아이들과, 직원들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인가? 설립 기념일은 뒤돌아보기에 좋은 때이다. 우리의 현주소가 어떠하며,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때이다.
적극적인 전략적 사고와 계획을 수립하기에 좋은 때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일상적인 활동 반경에 사로잡히곤 한다. 우리는 한발 물러나 현재의 우리가 아닌, 우리가 가야할 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설립 30주년을 기념하면서 우리는 어렵고 혼란스런 시기를 넘겨 거둬온 성공을 뒤돌아본다. 우리는 미래에 성공을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 자리를 빌어, 라파포트의 모든 직원을 대신하여 전세계에 있는 수천 명의 친구들과 후원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들은 어려울 때도 힘들 때도 우리 곁을 지켜 주었으며 우리의 노력에 지속적인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 마틴 라파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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