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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쓰기 법칙 Das Buch

연암이 말하는 글쓰기 법칙

一. 정밀하게 독서하라
글쓰기의 시작은 독서다. 근래 들어 속독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난무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의미 해석 능력이다. 연암은 천천히, 꼼꼼하게 읽다 보면 미처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二. 관찰하고 통찰하라
관찰과 통찰은 글쓰기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꼼꼼하게 읽고 나면 이젠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책에 담긴 의미를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절차탁마의 과정이 필요하다.

三.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여 뜻을 전달하라
옛것을 따르되 변화를 수용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되 옛것의 법도를 지켜야 한다. 그때 고루하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글을 쓸 수 있다.

四.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
대립되는 관점을 아우르면서도 둘 사이를 꿰뚫는 새로운 제3의 시각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五. 11가지 실전수칙을 실천하라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제목의 의도를 파악해서 글을 쓰며, 사례를 적절히 인용하고,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며, 운율과 표현으로 흥미를 배가하라. 인과 관계에 유의하고,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며, 반전의 묘미를 살려서 시작과 마무리를 잘하라. 또한 함축의 묘미를 살리고, 반드시 여운을 남길 것이다.

六. 분발심을 잊지 말라
한 번 뱉으면 사라지고 마는 말이 아니라, 지극한 초심으로 한 자 한 자 새긴 글로써 세상에 자신의 뜻을 증명해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의 자세는 이와 같아야 한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이 알려주는 글쓰기 법칙
[조선일보 2007-07-28 02:53:41]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설흔·박현찬 지음|예담|294쪽|1만1000원
이 책은 우선 장르가 특이하다. 조선의 문장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남긴 글을 바탕으로 이 활달하고 괴팍한 지식인의 노년을 재현한다. 그리고 연암이 노년에 얻은 어린 제자 김지문에게 가르친 글쓰기 법칙을 중간 중간에 넣어 장(章)과 장(章)을 나누는 가르마로 삼았다. 요컨대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쓴 실용서, 혹은 실용서의 형식을 차용한 소설이다.
연암이 세상을 떠난 지 11년 뒤인 1816년,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전전긍긍하며 붓을 들고 앉아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연암의 글 중 상당수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이라는 세간의 소문을 불식하기 위해 아버지의 전기를 쓰고자 결심했으나, 불행히도 종채는 과문(科文) 짓는데 능한 우등생일 뿐 재기 넘치는 문사가 아니었다. 이때 지나던 과객이 청지기를 통해 웬 책 한 권을 종채 앞에 들여보낸다. 종채가 펼쳐보니, 연암이 노년에 제자 김지문에게 글쓰기 법칙을 가르친 내력을 담은 책이었다. 문제는 연암이 쓴 글 상당수가 김지문이 썼다고 적혀있는 점이다.
종채는 기겁했다. 그러나 독자는 안심해도 좋다. 청지기를 시켜서 책을 들여보낸 과객이 바로 김지문이었다. 이 가공의 인물이 실존 인물인 종채에게 “모든 것은 내가 지은 소설일 뿐”이라고 말하고, 김지문이 지은 소설을 읽으며 아버지의 호방한 기상을 재확인한 종채가 눈물을 떨구며 아버지의 전기에 서문을 쓰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끝난다.
저자는 후기에서 “연암의 글쓰기 방법론을 소설 형식으로 서술했고, 책의 서사가 역사적 사실과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팩션(faction)”이라고 이 책을 규정했다. 그리고 “소설의 구성과 서술에 있어서 철저하게 ‘연암 따라하기’를 시도했다”고 했다. 저자가 박제가, 유한준 등 연암과 동시대를 살아간 지식인들을 생생하게 묘사한 재치있는 에피소드들이 돋보인다. 가령 연암의 라이벌인 창애(蒼厓) 유한준(兪漢雋·1732~1811)은 연암이 은거한 계곡에 찾아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떵떵거리던 자네가 골짜기에 처박혀 산다기에 보러 왔네. 자네같이 살면 어떻게 되나 늘 궁금했거든”하고 약을 올린다(92쪽).
저자가 압축한 연암의 글쓰기 법칙은 네 가지다. 첫째, 정밀하게 독서하라. 둘째, 관찰하고 통찰하라. 셋째,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여 뜻을 전달하라. 넷째, 관점과 관점 사이를 꿰뚫는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 책 속에 발췌된 연암의 글에 빠짐없이 주를 달아 원전을 밝힌 점, 이 소설을 쓰는데 참고가 된 학술서적을 일일이 거명한 점이 믿음직하다.
[김수혜 기자]
출처 : 조선일보 2007-7-28
연암을 ‘작문 선생님’으로 모시다
[문화일보 2007-07-26 15:03:25]
지난해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1737~1805)의 한문 산문을 우리말로 옮긴 ‘연암을 읽는다’(돌베개)를 펴낸 서울대 박희병(국문학) 교수는 “연암은 조선의 셰익스피어”라는 극찬을 했었다.

연암의 글은 고도의 구성과 안배로 배열된 치밀함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깊은 사유와 미학적 고려를 담고 있다는 현대적 평가를 받고 있다. 유교사상이 담긴 엄격한 형식을 갖춘 문체만을 요구하던 당대에 연암의 글은 1792년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한문의 문장체제를 고문으로 회복하자는 주장)을 부를 만큼 파격이었다. 문체반정으로 인해 연암의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되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 모처럼 싹트려 하던 조선 후기 문학은 된서리를 맞고 쇠락하게 된다.

근래 연암의 글이 현대적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예담)라는 제목의 그의 문장론을 다룬 이색적인 소설이 출간돼 관심을 모은다.

이 책은 우선 종전엔 볼 수 없던 형식을 띠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실제와 가공의 인물을 넘나들고 사실과 허구가 결합됐다는 면에서 ‘팩션(fac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본격소설이면서 실용적인 글쓰기를 배운다는 측면에선 ‘인문실용소설’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연암이 ‘법고’와 ‘창신’을 모두 품는 길을 택한 것처럼, 책도 ‘인문’과 ‘실용’을 함께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책의 저자도 조선 근대인물에 관심을 가져온 소설가 설흔(40)씨와 스토리텔링 디렉터로 잘 알려진 출판인인 박현찬(49·스토리로직 대표)씨가 함께 작업을 했다. 두 저자의 합동작업도 관심거리다. 박씨는 “대개의 과정이 협의를 통해 이뤄졌지만, 스토리 구상과 구조, 글쓰기에 대한 접근 등은 내가 주로 담당했고, 이에 대한 소설적 표현은 설흔씨가 맡았다”고 들려준다. 소설의 쇠퇴와 새로운 장르가 논의되는 근간에 이들의 새로운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글쓰기와 관련해서 그동안 적지 않은 책들이 나왔지만 대개는 서구적인 방법론에 기대고 있다. 책은 우리 근대의 단초를 엿보게 했던 연암을 통해 글쓰기의 방법론을 찾는다는 참신성이 또 있다. 따라서 책은 연암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가”라고 묻는 형식으로 꾸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박씨는 “소설의 구성이나 서술에 있어서도 철저히 ‘연암 따라하기’를 시도해 보았다”면서 “여러 의미에서 이 책은 연암에 대한 오마주(hommage)”라고 설명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김지문 등 몇몇 인물을 제외하곤 실제 인물이다. 이들 인물은 연암과의 당시 정치적, 학문적 교유의 기록들에 근거해 재구성돼 있다.

연암 박지원의 아들 종채는 아버지의 글이 표절이라는 소문이 돌자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버지의 행장과 글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던 즈음 종채에게 한 권의 책이 전달된다. 그 책은 아버지의 연암협 시절에 제자로 글쓰기를 배웠던 김지문이 당시의 사정을 세세하게 다룬 소설이었던 것.

소설 속에는 입신양명을 위한 글쓰기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문장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좇는 지문의 고민과, 법고와 창신 사이에서 새로운 모색을 하던 아버지의 고뇌가 그대로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 심취해 있던 종채는 문득 이 책의 실제 저자가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데….

엄주엽기자
출처 : 문화일보 2007-7-26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이 알려주는 글쓰기 법칙
/김은경기자
설흔·박현찬 지음/예담/296쪽/1만1천원
설흔·박현찬 지음/예담/296쪽/1만1천원
시계추를 조선으로 돌려 연암을 만나게 되었다. 당신이라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설흔·박현찬이라면 두 말 할 것 없이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으로부터 글쓰기 비법을 전수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곧장 머리를 조아리고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까"하고 제자삼기를 청했을 것이다.

이 책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며, 탁월한 글쓰기 이론가인 연암을 찾아가는 여정을 조금 독특한 형식으로 정리한 작품이다. 연암의 사후 그의 글을 둘러싼 표절 시비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연암의 글쓰기 비밀을 하나둘 밝혀나가는 내용으로, 사실과 허구를 결합시킨 '팩션'(Faction) 형식이다. 이용후생의 실학파이면서, 법고 창신의 길을 게을리 하지 않은 연암의 삶과 글쓰기가 저자들에 의해 고스란히 공개된다.

사실 글쓰기 관련 책은 이미 시중에 포화상태다. 독자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듯 책마다 다양한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이 그 많은 글쓰기 책들을 놔두고 굳이 이 책을 펴낸 것은 "글쓰기 정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없이 방법론만 제공하고 있다는것"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방법론도 제시하지만, 보다 중요한 글쓰기의 첫 걸음인 독서의 중요성부터 글쓰기의 자세까지 연암의 입을 빌려 쉽고 친절하게 소개한다.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실존인물의 등장을 통해 생동감을 주고 있다. 정조대왕은 물론 김조순,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실존인물과의 일화를 비롯해 당대의 사회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또한 쉽고, 간결한 소설적 문체, 동화적 느낌이 나는 일러스트의 삽입 등으로 보다 가볍게 연암의 삶과 문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소설에서 연암의 글에 얽혀 있는 비밀을 추적하는 아들을 따라가다 보면 연암의 삶의 공간에 들어가 글쓰기를 배움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한층 성장해가는 체험을 하는 듯 하다.

"인문과 실용은 다른 것이기는 하지만 본래 대립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저자들은 "이 책은 법고와 창신을 대립으로 보지 않고, 그 모두를 품어 안고 넘어서는 길을 택한 연암에 대한 오마주"라며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저자 설흔은 고려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썼고, 박현찬은 서울대에서 문학과 언어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스토리로직의 대표로 있다.
출처 : 영남일보 2007-8-4
책읽기-연암에게서 배우기
◇ 연암에게 글 쓰기를 배우다/설흔.박현찬 공저
이 책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 연암 박지원과 그에게 글 쓰기를 배우려는 제자 지문의 이야기를 소설로 꾸민 것이다. 느긋하게 소설을 읽다보면 '글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알 수 있다. 연암과 마주 앉아 직접 글쓰기를 배우는 마음으로 읽어보자.
착실하게 과거 공부를 하던 지문은 아버지와 함께 연암을 찾아간다. 아버지는 연암에게 '아들 지문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아들 지문이 이미 글 깨나 읽었으며 재능이 남달라 훌륭한 재목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러나 연암은 듣지 않는다. '하시던 과거 공부나 계속 하시라, 나는 가르칠 게 없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그러나 지문은 포기하지 않는다. 연암은 고집을 피우는 지문에게 묻는다.
"자네는 몇 글자나 아는 고?"
연암이 지문에게 던진 첫 질문이자 글쓰기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이 물음은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몇 권이나 읽었는가?' 책을 많이 읽어야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자신이 읽은 책 권수를 말한다거나, 자신이 아는 글자 수를 말하는 것은 이 질문에 적합한 답이 아니다. 지문은 과거에 너끈히 합격할 만큼 많은 책을 읽었지만 연암의 물음에 선뜻 답을 못한다. '자네는 몇 자나 아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닌 것이다. 지문은 고심 끝에 대답한다.
'아는 글자가 없습니다.'
그저 읽고 외웠을 뿐 글자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했으니 제대로 아는 글자가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연암은 비로소 지문을 제자로 받아들인다.
글 쓰기의 기본은 읽기다. 이 읽기는 과거시험을 대비한 읽기, 독서카드를 채우기 위한 읽기와 다르다. 과거를 보려면 경전을 외우고 과문을 익히기만 하면 된다. 연암은 "과거 급제는 똑같은 것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느냐에 좌우되는 셈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말한다. 독서가 중요하다니까 쌓아놓고 읽었다는 식의 독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연암은 지문에게 말한다.
"우선 논어를 천천히 읽게.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읽어야 하네. 그저 읽고 외우려고 들지 말고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게. 잘 아는 글자라고 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네. 반드시 한 음 한 음을 바르게 읽게"
연암의 이 충고는 오늘에도 적용된다. 책을 줄거리 파악하듯 혹은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외우듯 읽어서는 안 된다. 푹 젖어서 읽어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감동하고 분노하고, 울고 웃어야 한다. 몇 권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하다. 영혼으로 읽지 않고 눈으로 읽었다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별 도움이 안 된다. 기껏해야 책에서 읽은 지식을 주절대는 정도에 그칠 뿐이다. 연암은 말한다.
"독서는 푹 젓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지식만큼 중요한 것이 울림이다. 글쓰기는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글을 쓰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동기는 곧 영혼의 울림에서 비롯된다. 영혼의 울림을 받기 위해서는 감동이 필수적이다. 감동 받은 영혼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감동 없이 주입한 지식은 조잡한 '나열'에 불과하다. 각 대학의 논술시험에서 절반이 넘는 글이 비슷하다고 한다. 이는 감동 없이 지식을 주입하고 나열했기 때문이다. 이런 글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연암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정밀한 독서' '푹 젖는 독서'였다. 많이 읽는 게 아니라 잘 읽어야 한다고 연암은 거듭 강조한다. 또한 책뿐만 아니라 천지만물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도통 천지만물을 제대로 읽고 음미할 줄 모른다. '천자문'에 '천지현황(天地玄黃)', 즉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나와 있으니 그저 그런 줄 안다. 네가 보기에도 하늘이 정녕 검으냐?"
연암은 이 물음을 통해 문자로 된 것만이 책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늘 책만 본다면 물고기가 물을 인식하지 못하듯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에는 크게 6가지 글쓰기 법칙이 나와 있다. 그러나 정작 연암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글쓰기의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다. '기술'이나 '잔재주'로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면 제대로 읽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우선 좋은 글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책 역시 6가지 글쓰기 비법으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요약해서 비법만 챙겨본다면 흔해빠진 글쓰기 기술을 익힐 뿐 글쓰기 태도를 알 수 없다. 진정 연암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을 권한다. 바른 태도 없이 좋은 글을 쓰기는 어렵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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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08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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