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사치가 아닌 생물학적 본성>
연합뉴스기사전송 2009-07-15 17:07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많은 사람이 예술은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미술은 경매에서 어마어마한 돈에 팔리는 작품이고 공연은 비싼 표 값 때문에 큰맘 먹지 않고는 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예술이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지만, 생산적ㆍ건설적인 행위라거나 인간이 먹고사는 데 필수적인 생존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부른 사람들이나 누리는 사치품으로 여긴다. 그러나 미국 인류학자 엘렌 디사나야케는 1992년작 '미학적 인간-호모 에스테티쿠스'(예담 펴냄)에서 인간의 예술적 행위는 보편적이고 '생물학적'인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예술을 갈구하며 산다는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라 동물행동학적으로, 다윈의 진화론적으로 살펴봤을 때 인간은 미술과 함께 진화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인간이 있는 곳 어디에나 예술이 있다. 저자는 먼저 예술이 생물학적 욕구이며 이를 충족하는 것이 당연한 행위라고 설명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예술은 '영혼의 밥'이 되기 이전에 '육체의 밥'이다. 어린이들이 양육자에게 유대감을 보이는 '애착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처럼, 인간의 성장과 함께 '예술 행동'도 당연히 발달한다. 기가 막힌 미술 작품을 봤을 때나 음악을 들을 때의 아찔한 느낌, 무용수가 번쩍 뛰는 모습을 볼 때나 경이로운 조각상을 손으로 만졌을 때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육체적인 흥분과 쾌감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비생산적인 것은 도태될 수밖에 없으나 생존과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예술은 인간의 습성에서 전혀 도태되지 않았다. 저자는 이를 '특별화하기(Making Special)'의 욕망이 인간에게 생물학적으로 부여된 선천적인 성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야 했던 선사인들도 자신과 부족을 특별화하려는 욕구에 충실했다. 예술은 인간에게 신체적, 감각적, 감정적 만족과 쾌감을 제공하면서 인간을 특별화하기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예술을 개인적 충동이나 욕망의 발현으로 보지만, 애초에 인류는 예술을 공공활동으로 번성시켜 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집단에서 벗어나 살 수 없듯이 예술도 집단에서 숨을 쉬었다. 인간이 인간을 향상시키려는 본능의 산물이 예술이다. 이 책이 이렇게 예술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것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쳐 지금에 이른 현대사회가 예술의 본질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합리적 이성을 바탕으로 한 모더니즘은 예술을 객체나 성질로 여겼고, 해체주의적인 포스터모더니즘은 예술을 텍스트나 일용품으로 봤다. 저자는 이 둘에서 모두 벗어나 예술은 우리의 '종적 특이성', 다시 말해 인간성에 본질적인 것을 인지하라고 촉구한다. 예술은 모든 사회, 모든 계층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행위이자 성질이라는 주장이다. 꽤 길고 학술적인 분석을 내놓던 저자는 끝에서 솔직한 한 마디로 이 책의 논지를 정리한다. "지금까지 길고 복잡한 본문은 간단한 결론, 즉 말하기, 일하기, 운동, 유희, 사회화, 학습, 사랑, 보살핌 같은 인간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행위와 관심사들처럼 '예술도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장려하고, 개발해야 할 인간의 정상적이고 필연적인 행동'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김한영 옮김. 496쪽. 2만5천원. cherora@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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